DVD·PC·드론 첫선…'혁신 사관학교' CES 50년
5~8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Consumer Electronics Show)는 올해로 50돌을 맞았다. 50년 역사의 CES에선 세상을 놀라게 한 수많은 전자제품이 선을 보여 소비자를 열광시켰다. CES에 최신 기술의 '경연장' 또는 '집합소'란 별칭이 붙은 이유다. 초창기 CES를 달군 것은 비디오카세트녹화기(VCR)였다. 1970년 네덜란드 업체 필립스는 CES에서 VCR 'N1500'을 선보여 VCR의 대중화가 시작됐음을 세계에 알렸다. N1500은 최초 제품은 아니었지만(56년 미국 업체 암펙스가 세계 최초 상업용 비디오녹화기를 개발), 가정용으로 크기를 줄이고 가격대를 낮춘 VCR이었다는 점에서 최초 제품 공개나 다름없는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세계 첫 VCR인 암펙스의 제품은 680㎏에다 가격은 7만 달러나 됐다. 하지만 N1500은 훨씬 작은 크기에 2000달러까지 가격대를 낮췄다. 필립스와 CES가 연 가정용 VCR의 시대는 글로벌 기업들의 뜨거운 기술 경쟁을 촉발했다. 이는 CD(Compact Disc)와 DVD(Digital Versatile Disc)의 시대가 열리는 촉매제가 됐다. 흥미롭게도 가정용 VCR의 시대에 종말을 고한 CD플레이어와 DVD플레이어 역시 CES를 통해 공식 '데뷔'를 했다. 기업들이 아날로그 방식 비디오테이프의 단점인 저화질과 짧은 수명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내놓은 최신 기술도 CES라는 화려한 무대를 필요로 했다. 일본 소니는 81년 독일에서 최초의 상업용 CD를 출시했고 같은 해 CES에서 CD플레이어를 처음 선보였다. CES가 이듬해인 82년 나온 최초의 상업용 CD플레이어 'CDP-101'의 등장을 알리는 첫 무대였던 셈이다. 96년 CES에선 DVD플레이어가 등장, 고용량과 고화질의 저장매체와 재생기기를 갈구하던 소비자들을 만족시켰다. CES는 '전자제품의 꽃' PC와 TV의 역사에도 깊이 연관돼 있다. 82년 CES에서 공개된 '코모도어64'는 PC 시대의 본격 도래를 알린 기념비적 제품이다. 미국 업체 코모도어인터내셔널이 선보인 이 컴퓨터는 8비트에 64KB짜리 램(RAM), 1㎒짜리 칩을 장착했고, 가격도 595달러로 기존에 나왔던 컴퓨터에 비해 훨씬 저렴했다. 코모도어64는 같은 해 출시, 94년까지 1700만 대가 팔렸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PC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2010년 CES에선 태블릿이 공개돼 PC 시장의 격변을 예고하기도 했다. 휼렛패커드(HP)의 태블릿 '슬레이트'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7' 운영체제(OS)를 탑재했고 670g에 불과해 노트북을 대체할 차세대 PC로 주목받았다. 이후 애플 '아이패드' 등이 가세하면서 태블릿은 정말로 노트북을 빠르게 대체하기 시작했다. TV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고화질(HD) TV도 98년 CES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종전의 아날로그 전송 방식 TV보다 고화질로 선명하게 방송을 시청할 수 있게 해 2003년 무렵부터는 기존 TV를 빠르게 대체해나갔다. 이후 지상파 디지털 방송뿐 아니라 위성 디지털 방송 시스템까지 발전하면서 방송 송출 시장의 판도가 바뀌었다. CES는 HD TV에 이어 인터넷프로토콜(IP) TV(2005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2008년), 3차원(3D) TV(2009년), 스마트TV(2011년), 플렉서블OLED TV(2013년), 울트라HD TV(2014년) 같은 최신 TV가 잇따라 선을 보이는 장으로 활용됐다. 그 과정에서 세계 소비자들은 TV 시장의 주도권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오는 과정을 지켜봤다. 2000년대 중반까지 세계 TV 시장은 소니 등을 앞세운 일본이 장악하고 있었다. 2006년 3분기 삼성전자가 세계 TV 시장점유율 1위에 올라서면서 주도권을 뺏어왔지만, 소니가 2008년 세계 최초 상업용 OLED TV 'XEL-1'을 CES에서 선보일 때만 해도 일본의 반격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소니는 패널의 대형화와 높은 생산단가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고, 그 사이 삼성전자와 LG전자 같은 한국 기업들은 급성장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일본과의 격차를 한층 벌렸다. 삼성은 2008년 세계 최초 3D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TV를 상용화하는 등 '패스트 팔로워'에서 '퍼스트 무버'로 변신, 지금껏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LG도 앞선 디스플레이 기술력을 앞세워 세계 2위를 유지하고 있다. 수십 년간 일본이 장악했던 글로벌 게임 시장 판도를 바꾼 첫 무대 또한 CES였다. MS는 2000년대 들어 자체 개발한 게임기로 콘솔게임(TV로 즐기는 비디오게임) 시장에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2001년 CES에서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등의 대항마가 될 '엑스박스' 게임기를 선보이면서 포문을 열었다. 빌 게이츠 MS 기술고문은 당시 CES에서 직접 엑스박스를 공개하면서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와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대용량의 하드디스크를 탑재해 PC와 비슷한 사양을 갖췄다"고 소개했다. 여기에 유선 랜(LAN) 포트를 기본으로 갖춰 소비자들이 온라인에서 쉽게 게임 대결을 펼칠 수 있도록 해 주목받았다. 한편 오늘날 세계 산업계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무인항공기 드론도 CES 출품을 계기로 민간 부문에서 상업화 가능성이 활짝 열린 경우다. 프랑스 업체 패럿이 지금처럼 4개의 프로펠러가 장착된 형태의 드론을 2010년 CES에서 처음 공개했다. 이는 요즘 나오는 상업용 드론의 모태가 됐다. 당시 CES 현장에 있던 미국 디지털마케팅 업체 AKQA의 한 관계자는 "CES에서 드론 전용 부스가 마련된 것이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나란히 배치됐다"며 "그때만 해도 '비싼 장난감' 정도로 여겨지던 드론이 지금에 와서는 산업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고 했다. 최근 미국의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이 세계 최초 상업적 드론 배송에 성공하는 등 드론의 활용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창균 기자